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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주목엔 한국문학에 대한 편견 없을까 / 한국일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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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주목엔 한국문학에 대한 편견 없을까
[복면기자단] 맨부커상 후보 한강 ‘채식주의자’ 어떻게 읽으셨나요
맨=언론의 헤드라인을 보면 온도차가 더 극명하다. 기사만 보면 침체된 한국 소설이 부활해 세계까지 뻗어나갈 기세지만 정작 책에 대한 독자의 평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여왕=김기덕 영화가 해외에서 상 받아도 국내에서 관객 안 드는 것과 비슷한 건가?
맨=그렇지. 현재 맨부커상에 대한 관심은 작품 자체보단 우리 문학의 우수성을 확인 받는 데 더 초점이 있는 것 같다.
맨=한강은 소설이 아닌 시로 먼저 등단했다. 단편은 문학장르에서 소설보다 시에 가까운 장르로 분류되는데‘채식주의자’는 세 편의 단편으로 이뤄진 연작소설이라 작가의 강점이 두드러진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적인 소설’이란 특징 때문에 단편보다 장편이 강한 외국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을 수 있다. 다만 소재나 설정이 다소 매니악해 국내에서도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다.
맨=나는 극단적인 설정이나 폭력 서사를 좋아하는 편이지만 읽으면서 약간 지쳤다. 국내 소설을 볼 때 김기덕 영화의 한 장면이 겹쳐지는 게 유독 이번만이 아니다. ‘노란 비닐장판 위에 흩뿌려지는 새빨간 피’ 같은 설정에 숫제 무감각해질 지경이다. 그런데 외국 독자 서평 중엔 “태어나 본 것 중 가장 기괴한 이야기”란 말이 많아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캣츠걸=여성성을 앞세워 남성의 폭력을 말한다든지 식물성을 여성주의와 연결시키는 데서 다소 전형적이란 느낌을 받았다. 왜 굳이 여성성을 일부 페미니스트의 주장처럼 생명과 연결시키는 건지. 영혜가 브래지어를 풀고 젖가슴은 아무것도 살생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 잘 읽히다가도 그런 데서 막혔다.
싸이=외국에서 우리 문화가 호평을 받았을 때 오리엔탈리즘의 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 저들 눈에 희한한 것, 이색적인 것을 한국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싸이=베트남에 갔을 때 호치민대 한국어과 학생들을 만났는데 자기들이 읽는 한국 소설이라고 내놓은 게 ‘귀여니’ 류의 인터넷 소설이었다. 거기 나오는 멋있는 남성을 한국 남성으로 알고 있더라. 우리보다 경제적 위상이 낮은 나라에서 한국에 기대하는 건 자본주의와 결합한 화려함이다. 반대로 선진 문화권이 한국이라는 제3세계에 기대하고 예상하는 건 어둠침침하고 어딘가 아픈 모습이다. 그럴 거라고 지레짐작하는 거다. 다들 보고 싶은 것만 보니까.
캣츠걸=맨부커 후보에 오르기 전 뉴욕타임스와 가디언이 이 작품을 주목했을 때 국내 신문이 그걸 보도하자 문학평론가 이명원씨가 김연수, 김영하보다 한강이 주목 받는 게 흥미롭다고 하더라. 그런 작가는 현지에 이미 많은 반면 한강 같은 작가는 없으니 관심 받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프물범(이하 물범)=김영하는 그들에겐 너무 세련된 아저씨인 거다. 제3세계에 ‘감히’ 어울리지 않는.
맨=번역가 데보라 스미스는 한국을 들먹이며 마케팅하지 않겠다고 강조했었다. 그래도 언론과 서평에선 ‘코리아’란 단어 일색이긴 하다.
여왕=내가 이 소설에서 견딜 수 없는 건 한국 문학에 면면한 여성 캐릭터의 수동성이다. 폭력과 고통에 맞서지 않고 내면의 정신승리로 초월하거나 자기파괴로 나아간다. 서영은의 ‘먼 그대’ 이후 30년이 넘도록 한국 여성 작가들이 폭력에 대처하는 방식이 대체로 이렇다. 폭력의 구조 바깥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거다. 소설 마지막에 영혜의 언니가 “기껏해야 네가 할 수 있는 건 널 다치게 하는 것뿐이겠지”라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슈렉=하지만 최근 드라마의 강한 여성 캐릭터처럼 불의를 무찌르는 게 꼭 현실적이라고 할 순 없다. 실제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적고, 영혜처럼 자신을 해하는 게 폭력에 둔감한 사람들에겐 더 말하는 바가 많을 수 있다.
맨=자학적 대처는 여성 작가뿐 아니라 모든 개인에게 허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사회 인식 개선에 앞장설 의무는 없고, 자해가 성격에 맞으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여왕=하지만 ‘one of them’(그들 중 하나)이 아니라 ‘most of them’(그들 대부분)이니 문제인 거다. 왜 동물성의 상상력을 앞세운 여성작가는 없나. 최근 문화연구자 오혜진씨의 ‘개저씨 문학론’에 공감했던 건, 남성 지배적인 문단 제도 내에서 여성의 저항이 승인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형태가 이것뿐이었던 것 아닐까 하는 의혹 때문이다. 이런 서사는 남성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폭력을 말할 수 있는 편리한 방법이다. 작가가 그걸 의도했다고 할 순 없지만, 나는 작가의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그 수동성이 못마땅하다. 물론 취향의 문제지만, 상상력의 시장 독과점 문제는 지적하고 싶다.
맨=작중 인물이 시대에 뒤처지고 국내에서 호응을 못 얻더라도 외국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졌다면 수상 가능성이 있다. 제3세계 다른 작가들이 그랬듯이.
여왕=영화 담당기자는 어쨌든 경하할 일이라고 하더라. 김기덕 감독의 수상에 국내에선 “더 좋은 영화 많은데 왜 저게 받을까”란 말이 나오지만 타자의 눈에 띄는 그런 사람이 먼저 길을 뚫어야 시장이 열린다는 거다. 그러고 나면 박찬욱, 봉준호처럼 자기 색을 지키면서도 시장성이 있는 다음 주자들이 주목을 받게 되기 마련이니까 이런 시점에서 찬물을 끼얹어선 안 된다더라.
물범=소설의 문학성과는 별개로 맨부커에 기대 부활을 꿈꾸는 내수시장의 상황이 씁쓸하긴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거라도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싸이= 우리끼리만이 아니라 독자들 간에 격렬한 토론이 일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맨=사실 바라는 건 그거다. 맨부커 수상이 문단만의 축제가 되지 않으려면 국내 독자의 판단이 있어야 한다. 그게 호든 불호든.
나조차도 채식주의자를 읽지 않았으니...
기회가 되면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은 계속 가지고 있다.
한국문학을 아끼는 독자로서 바라는건 우리나라든 다른나라든, 어떤 방식으로든 한국소설이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기사 자체는 좋은 문제제기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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