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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본문

문학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별보기hs 2016. 3. 25. 21:58

<청춘의 문장들>을 읽고..
김연수의 문장들은 사랑스럽다.
책장을 넘기며 내 지난 청춘의 순간들을 애써 붙잡아본다.
청춘은 아련히 멀어져간다.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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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것은 스쳐가는 것들이 아니다. 당장 보이지 않아도 오랫동안 남아있는 것들이다. 언젠가는 그것들과 다시 만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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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꽃이 무수히 피어나도 떨어진 그 꽃 하나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음날 쓸쓸한 가운데 술에서 깨어나면 알게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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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소설을 쓰기로 결심하고 한쪽 구석에 앉아 글을 써내려가는 장면을 상상할 때 어떤 애잔함 같은 것을 떨칠 수가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이 치유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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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 동안의 행복. 그 정도면 충분하다. 문학을 하는 이유로도, 살아가거나 사랑하는 이유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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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흘러가고 슬픔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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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삶이란 눈 구경하기 힘든 남쪽 지방의 폭설 같은 것. 누구도 삶의 날씨를 예보하지는 못합니다. 그건 당신과 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잠시 가까이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고 나면 우리는 아마 다른 유형의 인간으로 바뀔 것입니다. 서로 멀리, 우리는 살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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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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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구르는 돌처럼 그렇게 굴러다니다가 낯선 곳에 머무는 게 삶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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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잊혀지는 것도 그렇게 아쉬운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잊혀진 것들은 변하지 않고 내 안에 남아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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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모습은 그대로인데, 이제 우리는 서로의 소식을 애써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10년 전 일이 어제처럼 생생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단 하루가 지난 일이라도 지나간 일은 이제 우리의 것도, 살아있는 것도 아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하더라도 그 눈빛을 다시 만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발을 동동거리며 즐거움에 가득 차 거리를 걸어가던 그때의 그 젊은이와는 아주 다른, 어떤 사람이 됐기 때문이다.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우리가 변한 게 아니라 우리가 변했기 때문에 세월이 흐른 것이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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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 청춘은 그렇게 한두 조각 꽃잎을 떨구면서 가버렸다. 이미 져버린 꽃을 다시 살릴 수만 있다면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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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사랑이 막 끝났을 즈음이었다. 한 사람을 향해서만 쏟아지던 감정이 갈 곳을 잃고 마음 속에서 넘쳐나고 있었다. 채 처리하지 못한 감정이 넘쳐나게 되자, 자연스럽게 육체적인 활동은 정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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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에서의 사람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만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한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그래서인지 우리는 금방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처럼 친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