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AUTY

SF 페미니즘 소설, 어슐러 르 귄 본문

문학

SF 페미니즘 소설, 어슐러 르 귄

별보기hs 2016. 3. 13. 12:24

여전히 현대미국소설 수업을 들을 때, Joanna Russ의 The Female Man과 어슐러 르 귄의 어둠의 왼손을 처음 대면한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SF에 관한 편견으로 가득차 있었던 나에겐 뭐랄까, 상상하지도 못했던 전혀 새로운 세상을 발견한 느낌이랄까.

SF 페미니즘 소설을 알게되고, SF장르에 관한 편견이 없어지게 된 건 내가 영문학 부전공을 잘했다고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1970년대에 여성작가가 여성만 존재하는 세상 혹은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불분명한 사회에 관한 글을 썼고, 그 글이 문단에서 인정받았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였다면 가능했을까? 아니, 지금도 불가능한 일이다.

교수님은 당시에 이 소설 수업 서두에서 "여러분은 여성만 존재하는(여성만으로 지속적인 생식이 가능한) 세상이 오면 어떨 것 같아요?"라고 물어보셨는데, 그 순간은 내 안의 단단했던 무언가가 도끼로 깨어지는 느낌이었다.

그 짧은 질문만으로도 이 사회에서의 여성의 존재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


오늘 무심코 인터넷에서 어슐러 르 귄의 짧은 인터뷰를 보고, 다시금 그때의 감정이 되새김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결코 원로 SF 페미니즘 작가의 선구안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슬프다.


<작가란 무엇인가3> 중에서.


르 귄 : (전략) 많은 사람들이 여성에게 얼마나 강력한 사회적 압력이 가해졌는지 깨닫지 못했어요. 


인터뷰어 : 아마 잊어버렸거나 전혀 몰랐을 겁니다. 


르 귄 : 젊은이들은 전혀 몰랐어요. 

그들의 할머니와 증조할머니가 요구받았던 게 뭔지 상상하지 못해요. 

제 생애 동안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거죠. 


인터뷰어 : 하지만 논쟁은 남아있는 것 같아요. 

가족이냐 일이냐처럼 이분법으로 바라보는 경향 말이에요. 


르 귄 : 그 논쟁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거기엔 문제가 있어요. 

제 개인적인 해결책은 제가 결혼한 남자와 관련이 있지요. 

한 사람이 두 가지를 전업으로 할 수는 없어요. 

가족을 전적으로 수발하면서 소설가가 되거나 교수가 될 수는 없지요. 

하지만 두 사람이 세 가지 일을 전업으로 할 수는 있어요. 

그게 바로 우리의 해결책이죠. 

소설가인 저와 교수인 찰스는 가사일을 분담해 세 가지 직업을 잘 수행해왔죠. 

저는 적어도 20년을 전혀 돈을 벌지 않은 채 그에게 의지해서 살았어요. 

그러다가 제가 돈을 벌어오는 집안의 기둥이 되었어요. 멋지죠! 


어슐러 르 귄의 2014년 미국 도서상 수상 소감

출처 http://gwenzhir.keithskim.com/3120607


이 아름다운 상을 주신 분들께 제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저희 가족, 제 에이전트, 또 편집자 분들까지, 제가 오늘 이 자리에 선 것은 저 뿐 아닌 그 분들의 공임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문학으로부터 소외돼 왔던 많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지난 50년간 소위 ‘리얼리즘’ 작가들만 이 아름다운 상을 받는 모습을 지켜만 봐야 했던 제 동료 환상·과학문학 작가들을 대신해 제가 이 상을 받고 또 공유할 수 있어 너무나도 기쁩니다.


제 생각에 앞으로 다가올 힘든 시대에는 현재의 삶에 대한 대안을 볼 줄 알고, 두려움 가득한 이 사회와 기술에 대한 집착을 뚫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는 법을 탐구하며, 나아가 진실된 희망의 영역을 상상해내는 작가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원하게 될 것입니다. 자유를 기억하는 작가들이 필요해질 겁니다. 시인들, 선지자들… 더 큰 현실을 말하는 리얼리스트들이죠.


현재 우리는 시장 상품을 생산하는 것과 예술을 행하는 것의 차이를 아는 작가들이 필요합니다. 기업이윤과 광고 매출을 극대화하는 영업전략에 따라 글을 만들어내는 것은 책임감 있는 책 출판이나 작가된 도리와는 다른 것이니까요. (용감하게 박수 치신 분들, 감사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집부에 대한 권한이 영업부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제 책의 출판사들도 바보같은 무지와 욕심의 공황 상태에 빠져서, 공립도서관에 전자책을 소비자가의 6~7배의 돈을 받고 판매하고 있습니다. 부당한 폭리를 취하고 있는 쪽에서는 출판사를 불복종으로 혼내주려고 하고, 작가들이 기업 율법에 의해 협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중 많은 사람들, 즉 책을 쓰고 책을 만드는 우리 제작자들이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만 있습니다. 상품 모리배들이 우리를 데오드란트인 양 팔아넘기고, 무엇을 출판하고 무엇을 쓸 지 명령하게 그냥 두고 있습니다. (저도 사랑해요!)


아시죠? 책은 그냥 상품이 아닙니다. 이윤 추구와 예술의 목적은 종종 갈등을 빚게 돼 있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안에 살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힘은 도무지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지요. 하지만 절대왕정 시절 왕의 권력도 그랬습니다. 사람이 만든 그 어떤 권력도 사람이 저항하고 바꿀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저항과 변화는 예술에서 출발합니다. 그 중에서도 많은 경우, 그것은 우리의 예술, 즉 말의 예술에서 출발합니다.


제 작가 생활은 길고도 복되었습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했습니다. 그 끝자락에 이르른 지금 여기에서, 미국 문학이 노예로 팔려나가는 모습은 정말 보고 싶지 않습니다. 글을 쓰고 출판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우리들은 그 결과의 공정한 부분을 바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받게 될 대가의 이름은 이윤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유입니다.


감사합니다.


아, 작가님 지금까지 살아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ㅜㅜ

미국은.. 이러니저러니해도 역시 선진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