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AU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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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게 이 감정을 쏟아내 묘사할 수 있을만한 능력치가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나는 '프랑수아즈 사강'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었다. 단순히 이름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이었다(나는 매력적인 이름에 쉽게 끌린다).
그녀는 프랑스의 사업가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어릴때부터 부르주아 계층에 속하기 위한 교육을 받아왔다. 물론 수녀원학교에 들어가서는 3년만에 퇴학당했고, 소르본대학 입시에서는 보기좋게 떨어졌지만.
그녀는 입시 실패 후에 두달동안 칩거하면서 소설을 썼는데, 그 소설이 그녀를 전세계적인 스타작가 반열에 올라서게 한 '슬픔이여 안녕'이다. 역시 인생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다.
그녀의 삶은 드라마틱했다. 이는 스스로 자초한 것일지도 몰랐다. 사강은 클럽과 나이트를 즐겨찾았고, 마약과 도박을 옹호했고, 스피드를 즐긴 탓에 부고 기사가 날 정도의 큰 교통사고 후에 기적적으로 생환하기도 했으니까.
이는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그녀가 가진 부르주아 계층에 대한 모순적인 불만같은 것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20대 중반에 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인간의 감정의 관성에 대한 글이다.
주인공은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는 예전 애인 로제와 자신만 바라보는 어린 새애인 시몽 사이에 갈등한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다시 자신에게 돌아온 로제를 향한다.
그녀는 시몽을 사랑하기 위해 맞서 싸워야 할 것들을 감내하고 싶지 않아했다. 남들의 시선과 불안정한 삶, 시몽보다 빨리 늙어가는 자신, 버림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이겨내고싶지 않아했다. 반면 로제를 선택하면 그냥 조금 외로우면 될 일이었다. 외로워지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주인공은 다시 로제에게로 돌아간다.
사실 내가 놀란건 독자들의 반응이었다. 독자들은 주인공의 선택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의 관성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사강은 사랑의 영원함 따위는 애초에 믿지 않았다. 첫번째 결혼을 스무살 연상과 한 후 8개월 만에 이혼한 그녀는, 두번째 결혼은 호남 미국인과 한 후 아들 하나를 낳고, 2년 만에 별거하고 결국 이혼한다.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보다는 긴 기간 사랑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감정의 최대치는 3년이라고 말했다.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서 주인공 조제는 프랑수아즈 사강을 좋아한다. 조제는 다음 구절을 낭독한다.
언젠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 날이 올거야.
베르나르는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겠지.
우린 다시 고독해지고. 그냥 흘러간 1년의 세월이 있을 뿐이야.
왜였을까. 그 순간 내 플레이리스트에서는 박정현의 '꿈에'가 재생되었고, 내 지난 이별의 장면들이 떠올랐고, 갑자기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이 강모연에게 "나랑 헤어지고 싶습니까?"라고 말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이 드라마에 흔했던 내 과거 상황들과 겹치는 장면들 중 하나였다.
나는 과연 그때 그렇게 말했던 그 사람의 감정을, 상황을 제대로 이해했던 걸까?
그 사람이 그런 말을 내뱉는 와중에도 나는 내 감정만을 생각했다. 내 이야기만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 사람에게 왜 그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는지 제대로 묻지 못했다.
나는 혼자 추측하고 단정지었을 뿐이었다.
그냥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는 핑계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던 건 아닐까.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하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나 정도가 감히 그런게 가능하긴 한 걸까.
누군가와 사랑한다는 건 어쩌면 필연적으로 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들...
아침부터 울적하면서 한편으로는 노곤하고 달콤한 상태가 섞인 - 사강의 글에 의하면 '슬픔'일지도 모르는 - 묘한 감정 상태를 경험하고 있다.
내가 설명하지 못했던 나의 감정 상태를 사강이 이미 표현해주었다.
사강은 천재 작가가 맞구나... 18살에 이런 감정을 알고 글로 쓰다니...
슬픔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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