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BEAUTY

한강 작가님 산문을 읽고 -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본문

리뷰

한강 작가님 산문을 읽고 - 나이가 든다는 것은

별보기hs 2024. 10. 27. 07:59

아침 일찍 잠에서 깨어 가을의 찬 공기에 차 한잔을 끓여 테이블 앞에 앉아 일전에 사두었던 <디에센셜 한강>을 폈다.
한강 작가님의 산문이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나 역시 한강 작가님의 글을 가장 처음 접했던 건 산문이었고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라는 얇은 산문집은 오랜 시간 동안 내가 가장 아끼는 책들 중 하나였다.
다만 그 산문집은 내게 어두운 느낌은 아니었는데 그 뒤에 접하게 된 한강 작가님의 작품들은 깊이가 깊고 어두워서 쉽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다.
옛 생각을 떠올리며 <디에센셜 한강>의 산문 부분을 폈는데, 첫 글 '종이 피아노'를 읽자마자 폭풍 눈물이 흘렀다...
이 눈물이 한강 작가님 글의 힘일까.

생일날 빵집에 들렀는데 생일이 비슷한 동갑 사장님이 가게에서 햄버거 시켜먹는 생일파티를 했다고 해서,
초등학생 때 생일파티 기억이 떠올랐다.
내 초등학교 시절은 맥도날드 생파를 하는게 아이들 사이에 유행이었는데, 나도 그 생일파티를 너무 하고 싶어서 며칠을 부모님께 졸랐다.
하지만 그때 우리집은 IMF 영향으로 아빠가 회사를 나오시고 되게 어려운 시절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너무 조르니까 맥도날드 생일파티를 해주셨지만, 생일파티 당일날 엄마는 오지 않으셨다.
파티가 끝나고 아빠한테 생일파티가 얼마냐고 물어봤는데 그때 당시 금액으로 30만원이었나... 엄청 큰 금액이었다.
나는 너무 현타가 왔고 그 뒤에는 한 번도 생일파티를 열지 않았고 아직도 즐겁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빵집 사장님은 어릴때 맥도날드 생일파티를 못해봐서 이번에 한거라고 그랬는데, 나는 해봤지만 좋은 기억이 아니라고 말했다.
'종이 피아노'를 읽는데 그때 생파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강 작가님이 어릴때 피아노를 배우고 싶었는데 집안 형편으로 피아노 학원을 다닐 수가 없어서 문구점에서 십원짜리 종이피아노를 사서 치셨다는...
그리고 집안 형편이 풀린 중학생 때 부모님이 갑자기 피아노 학원을 다니라고 하셔서 깜짝 놀라셨다는 이야기이다.
그때 맥도날드 생파를 열어주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알것만 같아서 폭풍 눈무리ㅠ.ㅠ
돌아보면 엄마도 피아노를 너무 배우고 싶어서 어른이 되고난 뒤에 피아노 학원을 다녔다고 했는데, 그래서 나는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다닐 수 있었던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윗세대의 결핍은 아랫세대에게는 그게 결핍인지도 모른 체 충족된다는 것...

'아버지가 지금, 책상 앞에 앉아 계신다'는 마찬가지로 작가이신 아버지(한승원 작가)에 관한 글이다.
부모님 이야기는 눈물버튼이쟈나요...
'귀밑머리 희어질 때쯤 쓰겠습니다'라고 했던 아버지에 관한 글을 쓰게 된 작가님.
나도 갓난애기인 나를 안고 있는 지금의 내 나이보다도 어린 부모님 사진을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의 오묘한 감정을 잊을 수가 없기에.
나이들기 전에는 몰랐던 작가님 가족 나들이 사진에 담겨있던 뒷이야기들이 더 와닿았다.
작가님 아버지처럼 우리 아빠도 새벽에 책상에 자주 앉으시는데.
이제는 나도 아침 일찍 테이블 앞에 앉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눈물이 많아지는 일일까.
글을 읽는 내내 눈물을 많이 흘렸다.